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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꾸준한 한 방향의 순종' ... 마가 13,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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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 마가 13,33-37

 

 

1. 그 때를 모른다는 것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조심하고 깨어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이야기입니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아니면 십년 후가 될지, 몇십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언제 나를 떠날지도 모르고, 언제 내 삶이 끝날지도 모르고, 언제 예기치 않은 병이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고, 언제 뜻하지 않은 도움이 펼쳐질지도 모르고, 언제 내 인생이 무너질만한 시련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언제 후미진 내 삶에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모른다는 것은 참 답답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생각합니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래를 알 수 있었다면 아마 이런 생각, 이런 후회는 하지 않겠지요. 우리 아버지가 떠나실 것을 내가 조금만 미리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그렇게 외롭게 두지 않았을 텐데, 그 날이 당신과의 마지막 만남인 줄 알았다면 내 일정이나 체면,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밀어둘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이 살 날이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있었다면 그렇다면 내 마음이 그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갑작스런 병이 나를 찾아올 줄 알았다면 무엇보다 건강을 챙기면서 살았을 텐데, 언제쯤 가뭄이 끝날지 알았다면 그 시절을 그렇게 팍팍하게 보내지는 않았을텐데. 우리는 그 날과 그 때를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용한 점쟁이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릅니다. 아, 예수님도 모르시다니 이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그 날과 그 때를 미리 알면 정말 좋을까요? D-27. 때때로 우리는 인생에서 이런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 날과 그 때를 아는 시간. 그 날까지 며칠 남았는가가 무척이나 중요한 시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시험이네요. 또 군대가는 날, 제대하는 날, 또 아이 낳는 날도 떠오릅니다. 이렇게 그 날과 그 때가 중요해지는 시간에는 나머지 날들이 그 빛을 잃거나 다른 빛깔의 옷을 입습니다. 더 중요한 하루, 더 큰 하루를 위해 나머지 날들이 쓰여집니다. 나머지 날들은 그 날에 매이게 되는 거죠. 한마디로 마감 시한을 받아놓고 사는 거죠. 게다가 마감이 한 두 개가 아닐 거쟎아요. 별로죠? 그 날과 그 때를 미리 알고 사는 것, 사실은 좀 별로입니다.

게다가 또 마감이 있다고 해서 내 삶이 완전히 조종되지도 않을 수 있어요. 어머니 돌아가실 날이 몇 달 남았는지 아는데도 어머니한테 자주 가보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돌아가시고 얼마나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겠어요? 차라리 모르는 게 낫죠.

그 날과 그 때를 모른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은총입니다. 한계가 사실 은총입니다. 그 날과 그 때를 모른다는 것, 답답하고 화나고 당신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하늘에서 우리들 우왕좌왕 하는 거 보면서 좋냐고 삿대질하고 싶은 사실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이건 신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은총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들었습니다.



2. 황무지 혹은 주님 없는 시절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모르는 그 날과 그 때는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날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잔인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기다린 날이 얼마나 길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드디어 메시야라 부를 만한 님을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이별이라고 3년 만에 또 가시는 거예요. 그리고 또 긴 기다림의 세월이 남은 거죠.

그런데 이 잔인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우리 신앙생활의 여정이랑 닮아있어요. 우리도 기다리고 기다려서 주님을 만나요. 주님을 만나는 순간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지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다 팔아도 좋을 만큼 행복하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주님이 사라진 것 같은 날들을 경험합니다. 주님을 만났다는 생각도 내 착각이었던 것 같고, 도무지 어디에서도 주님을 발견할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집니다. 다시 긴 기다림의 시간인 거죠.

얼마 전에 누군가 선물로 주셔서 ‘유진피터슨, 부르심을 따라 걸어 온 나의 순례길’ 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요. 한 미국 목회자가 적은 자신의 회고록이예요. 한 목회자가 자신의 소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적어놓은 글이어서 제게는 꽤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작가 스스로 ‘황무지’라고 부르는 시기에 대한 것이었어요. 이 목사의 황무지는 교회를 개척해서 건물을 짓는 과정이 은혜롭게 마쳐진 뒤에 찾아와요. 그 놀라운 과정이 마쳐진 뒤에 신기하게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거예요. 사람들은 교회에서 느꼈던 중심과 안정감을 다른 데에서도 발견했다고 말하면서 서서히 교회를 떠나가요. 그 때를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어요.


‘교회를 조직하고 짓는 힘든 일을 마치고 나면 거기에서 더 힘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함께 사는 교회라고 하는 새로 형성된 자신의 정체성을 모두가 기꺼이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그렇게 변화된 모습으로 기꺼이 다른 사람들도 초대하고 섬길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틀렸다. 일종의 사회적 질병 같은 것이 회중 안에 퍼지자 나도 힘이 쭉 빠졌다.......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때 나는 훗날 내가 ’황무지‘라고 이름붙인 시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곳에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될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황무지. 주님이 느껴지지 않는 시절. 사람들이 떠남으로 주님도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 시절.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이 그에게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에게뿐 아니라 우리 삶에도, 우리 신앙 생활의 여정에도 ‘황무지’가 있습니다. 마치 꽹과리 장단처럼 채쟁챙챙 잘 돌아가는 것 같던 삶이 삐걱거리며 순환을 멈추는 때, 가까이 계신 줄만 알았던 주님이 이제 전혀 느껴지지 않는 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이 계속되는 때, 그런 ‘황무지’의 시절, 주님 없는 시절이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 그 황무지의 시절이 끝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 우리 주님이 다시 오셔서 내 삶에 다시 윤기가 흐르고 촉촉한 샘이 솟아나게 될지, 그 날과 그 때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3. 그러므로 깨어있어라


앞서 말씀드렸던 유진피터슨은 당시 지역의 교회 개척을 담당하는 감독관을 찾아갔습니다. 감독관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건축 프로그램을 시작하세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구체적인 것,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필요해요. 어떤 도전이나 목표 같은 것 말이에요. 나를 믿으세요. 나도 겪은 일이니까. 그게 바로 미국식이에요.”

그는 감독관의 조언을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신의 죽음을 이야기했던 니체의 조언을 따르지요. 니체의 글을 읽다가 그는 이런 문장을 발견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 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는, 언제나 결국에는 생겼던 결과는, 인생이 가치 있어진다는 것이다.” 읽는 순간, 그는 감독관의 조언 대신 이 구절을 자기 삶의 텍스트로 삼습니다.


법륜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재래식 변소 밑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구더기가 바글바글 기어 올라옵니다. 10분이고 20분이고 꾸물꾸물 천천히 기어 올라옵니다. 그러다 거의 다 올라와서는 모서리에 걸려 똑 떨어집니다. 그러면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또 올라오고, 그러다 또 떨어집니다. 이렇게 수없이 떨어지고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중에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도 기어이 모서리를 넘어서 올라오는 구더기가 있습니다. ....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떨어져가면서 올라온 겁니다. 올라오다가 떨어졌다고 실망하는 구더기가 있습니까? 열 번, 스무 번, 백 번,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구더기를 보았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서너 번 해보고 안 되면 부처님을 한탄하고 하느님을 한탄하고 조상 탓을 하고 사주팔자 타령을 합니다. 길을 바르게 찾아서 꾸준히 해야 합니다. 안 되면 또 하고, 안되면 또 하고... 그렇게 해야 업장이 녹아나고 습관이 바뀝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렇게 정진하면 누구나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 법륜, 「기도 내려놓기」 중에서


오늘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어라. 우리 인생에 주님 없는 시절이 계속 될 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메마른 황무지가 계속 될 때,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그 날과 그 때를 아무도 모르므로, 그러므로 깨어있어라, 말씀하십니다. 깨어있어라.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오랜만에 영어 좀 쓰겠습니다. 영어로는 'Watch'입니다. 지켜보라는 거지요. 뭘 내 맘대로 막 하라는 게 아니고,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라는 게 아니고, 지금 내 자리에서 가만히 지켜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심어주신 하나의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면서 지켜보라는 겁니다. 구더기가 변소 위로 올라가듯,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정진하면서 지켜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면서 지켜보라는 것, 이것이 깨어있으라는 의미입니다.

깨어있으십시오. 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면서 지켜보십시오. 깨어서 우리 주님 황무지를 바람처럼 가르고 다가오시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메마른 땅에 촉촉한 샘물로 오시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누더기 같은 내 삶을 태우는 불길로 오시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심어주신 하나의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면서, 구더기가 변소 위로 올라가듯이,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가만히 지켜보십시오.


이렇게 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면서 지켜보는 것을 우리들 대림절의 실천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우리들 마음에 심어주신 한 방향을 떠올리십시오. 그리고 그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십시오. 언제 오실는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 주님 반드시 오신다는 것은 감히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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