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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스승 모시기'... 요한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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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 요한 1,35-42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3주가 됩니다. 새해 계획들은 세우셨는지, 세우셨으면 다들 지키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60년에 한번 찾아오는 흑룡의 해라는데, 용처럼 비상할 만한 계획들이 있으신지요? 자꾸 자꾸 묻고만 싶어집니다.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 방법 한 가지 소개하고 말씀을 함께 볼까 합니다. 소개하는 방법이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기보다 저에게 인상이 깊었던 방법이라서 소개해 볼까 합니다. 그것은 한 해의 삶에 있어서 주선율을 잡는 방법입니다. 사실 저희 삶이 꽤 여러 분야에 걸쳐있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것인지라 계획도 세우려고 하면 좀 복잡해집니다. 점점 더 다양한 분야의 계획이 나열되지요. 그런데 아름다운 음악도 다양한 음이 나열되기만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주선율이 있고 그 주선율이 변주를 통해 반복되면서 완성되어 갑니다. 한 해 계획을 세울 때 우리들의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먼저 주선율을 잡아 보세요. 이것이 복잡다단한 우리 삶을 보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완성해 갈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올해 제가 세운 주선율을 담고 있습니다. 저의 올해 주선율은 스승을 모시는 일이거든요. 따라다니고 싶은, 좀더 가까이 만나고 싶은, 기꺼이 그분에 의해 깨어지고 싶은 분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따르고 싶어요. 그동안 너무 스승 없이 혼자 막돼먹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 많이 들거든요.

 

 

1. 스승을 낳는 제자

 

오늘 말씀은 첫 번째 제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복음서 모두 첫 번째 제자를 만나는 과정이 쓰여져 있는데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의 말씀은 다소 독특합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먼저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직접 초청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그것도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것이 먼저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스승이 먼저입니까? 제자가 먼저입니까? 거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수준의 논쟁 거리지요. 스승이 먼저 된 사람이니 스승이 먼저라는 말도 맞고, 제자가 없으면 아예 스승이라는 자가 존재할 수 없으니 제자가 먼저라는 말도 맞습니다. 제자가 없이는 스승이 없고, 스승이 없이는 제자가 없습니다. 이야기하다보니 누가 먼저 불렀는가, 누가 먼저 따라갔는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네요. 오히려 스승과 제자가 나뉘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관계처럼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또 종과 주인. 모두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누가 아버지를 낳았습니까? 아버지의 아버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를 낳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건 바로 아들이지요. 그러면 누가 아내를 낳습니까? 그건 바로 남편입니다.’ 이 말씀 기억나십니까? 도법스님이 지난 여름, 우리에게 건네주신 말씀들 중 하나입니다. 아들은 부모가 낳지만, 아버지는 자식이 낳습니다. 이렇게 나를 아버지로 낳아준 이가 내 아들이다, 생각하면 마음 가짐이 달라집니다. 선생은 누가 낳습니까? 그렇지요. 제자가 낳습니다. 이 말씀 받아들이면 모든 아버지, 남편, 선생, 주인의 마음 가짐이 달라집니다. 선생을 낳는 이는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의 믿는 마음이 비로소 선생을 선생되게 합니다.

 

 

2. 한 선생 모시기

 

이쯤에서 한번 질문이 필요하겠어요. 제자가 선생을 낳는 거라면 예수님과 우리들의 관계에서 예수님이 선생님이 되셨습니까? 우리가 제자되기로 마음 먹으면 예수님이 선생님 되시는데요. 그렇지요? 졸졸 따라다녀야 우리를 돌아보시면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 물어봐 주실 텐데요. 각자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기를 바래요. 예수님이 내 삶에 선생님이신가? 나는 그분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나?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들이 많아요. 주님도 있고 친구도 있고... 많다고 얘기했는데 많이 생각이 나지 않네요. 또 오늘 말씀에서처럼 선생님도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분은 나에게 선생님이신가? 나는 그분의 제자인가? 나는 그분을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하였나? “와서 보라는 그분 말씀에 따라 그분과 함께 하는 하루를 지내보았나? 한번 가만히 물어보시길 바래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라는 책이 있어요. 현대 일본 불교 사상가 중 하나인 마이다 수이치가 스승인 아케가라수 히야에 관련하여 쓴 글을 모은 책이예요. 일반적으로 한국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을 구원자, 주님으로 많이 표현하는데 선생님으로 따르지는 않아요. 불교에서는 스승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지요. 가톨릭에서도 영적 지도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유독 한국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하면 오히려 그 절대성이나 신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기지요. 그런데 이 책에서 드러난 선생과 제자와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잘 부르지 못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절대성이나 신성을 침해해서가 아니라 아마 삶으로 그대로 따르기 싫어서가 아닐까요.

 

한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가 선생을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 바로 그것이다. 그가 과연 진짜 사람을 만나느냐, 진짜 인격을 만나느냐, 그것이 요점이다.

 

나는 아케가라수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에게는 그를 떠나서 다른 불법이 있을 수 없다. 그가 불법이다. 그가 석가모니 자신이다. 만일 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나의 일생도 실패작이다. 그래도 좋다. 나는 만족하면서 죽을 것이다.

 

여러 선생을 모시는 자들과 한 선생도 모시지 못한 자들은 아직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여러 신들과 붓다들을 예배하는 자들과 아무 신도 붓다도 예배하지 않는 자들은 아직 진리의 세계를 찾지 못한 것이다. 복되도다. 오직 한 분 선생을 모신 자들, 오직 한 붓다를 섬기는 자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중에서

 

어떠세요? 각자의 삶에서 우리 삶을 진리로 인도해줄 한 분 선생님 모시고 계신가요? 여러 명 말고 단 한 분. 그런 선생님 모시고 계신 분, 있으신가요?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최초의 제자들처럼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쫄래쫄래 예수님 가시는 길 따라가고 싶은 마음, 그분을 통하여 진리를 만나고픈 마음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삶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는 이

 

최초의 제자들이 졸졸 예수님을 따라가니까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십니다. “무엇을 찾고 있느냐?” 스승을 찾는 사람은, 누군가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은 사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스승을 통해서 진리를 찾는 것이지요.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사랑을 찾고 있습니다. 평화를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선생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좀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뭘 찾고 있는지 잘 몰라서 우물쭈물 나온 대답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설법을 원한 것이 아니라 삶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묵고 계신 곳. 그냥 그분 삶의 내밀한 자리에 함께 하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 또한 멋있습니다. 망설임없이 말씀하시지요. “와서 보아라.” 하시고는 그 날을 그들과 함께 지내십니다. 참된 스승은 말이 아니라 삶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새해 벽두입니다. 또 설날을 맞이하게 되어서 지금 다시 한 해 계획을 마음에 모시기에 적당한 때입니다. 한 해, 내 삶의 아름다운 교향악을 완성시켜줄 주선율을 마음에 그려보기에 적당한 때입니다. 저는 올해 한 스승 모시는 일을 제 삶의 주선율로 삼습니다. 저는 제가 스스로 속고 속이는 거짓된 놀음에서 저를 구해주실, 진리의 길로 인도해주실 스승을 한분 모시고 잘 따르고 싶습니다. 그분 역시 저처럼 한분이신 스승 예수를 모시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별 다른 계획 없으시면 저와 같이 이 계획에, 놀이에, 수업에 동참하셔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영성수련회가 준비됩니다. 좋은 스승 모십니다. 아마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스승이신 예수를 드러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스승이십니다. 한달 조금 더 남았습니다. 지난 해 사순절 한 말씀훈련이 다들 기억나실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만만한 말씀 하나 골라서 그 말씀 따라 살아보는 것입니다. 영성수련회까지 다시 한번 그 한 말씀 붙들고 그대로 따라서 살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해 말씀이 안에서 아직 여물지 않았다면 그 말씀 다시 붙들어도 좋고, 다른 말씀 하나 또 골라서 그대로 살아보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살아보시다가 영성수련회에서 선생님 모시고 그 말씀 따르면서 겪은 즐거움, 기쁨, 슬픔과 분노를 함께 나눕시다. 예수를 선생으로 모시고 내가 그분의 제자가 되는 기쁨을 우리가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스승의 가르침이 틀렸다해도 그래서 내 인생이 실패라 하여도 만족하며 죽어갈 것이라는 한 스님의 고백이 우리와 선생되신 예수님 사이에서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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