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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권위' ... 마가 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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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나갔다.

- 마가 1,21-28

 

 

최근 10년 사이에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설득력과 공신력이 급격하게 하락한 집단은 아무리 보아도 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유례없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교회는 각 교단마다 300만 성도운동, 500만 성도운동을 벌이면서 다시 전도에 집중했습니다. 물론 교단 통계를 통해서는 수치가 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도 그 수치를 믿지 않습니다. 아니, 그 수치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 수치보다 훨씬 더 가깝게 한국교회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폄하하는 표현으로 개독이라는 말이 인터넷 상에서 일반화되었고, 목사를 폄하하는 먹사라는 말도 많이 쓰여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목사들의 글에도 무차별적인 댓글이 달린다는 것입니다. ‘우린 너희가 생각하는 개독이 아니야, 너희가 생각하는 비판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구라고 속으로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그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개독 먹사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몇십년 안에 교회를 다닌다는 말은 개념 없고 찌질한 사람이라는 말과 동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씁쓸하고 마음 아픈 현실입니다.

 

 

1. 예수님의 권위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처음 하신 일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권위(權威)남을 통솔하거나 지휘하여 따르게 하는 힘’, 또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신, 또는 그런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사전에서는 명령을 내리거나 결정을 내리는 힘, 혹은 권리’,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는 힘’, ‘의심이 없는 자유; 자신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등으로 권위를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들으며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 속에 들어있는 권위를 알아보았습니다. 참 궁금해집니다. 예수라는 한 젊은 사내가, 자기 고향도 아닌 어떤 다른 지역의 회당에서 뭔가를 가르칩니다. 무슨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소개가 사전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의 가르침에서 사람들은 권위를 느낍니다.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느끼고 놀랍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들에게 권위를 느끼게 했을까요?

좀 다르게 돌아가 볼께요. 말씀 첫 머리에 한국교회의 권위가 아주 급격하게 하락했다고 말씀드렸어요. 도대체 무엇이 교회의 권위를 떨어뜨렸을까요?

 

 

2. 권위 - 그대로 이루어짐

 

신명기 말씀을 봅니다. 이스라엘에 예언자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호렙산에서 총회를 할 때 하나님 음성을 듣는 일이 사람들에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청원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한 사람, 예언자를 세워서 그 말씀을 맡길 것이니 너희는 그 예언자의 말을 들으라고 명하십니다.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 내가 너를 벌 줄 것이며, 내가 말하라고 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마음 속으로, 그것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말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제멋대로 말하는 그런 예언자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권위는 그 말과 현실과의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때 그 예언자가 하나님의 권위를 갖게 됩니다. 말이 어떻게 현실이 됩니까? 말하는 대로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말이 현실이 되는 길, 어디에 있습니까?

가장 쉬운 길, 그러면서도 가장 어려운 길부터 말씀드립니다. 말 하는 대로 그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면 말이 현실이 됩니다. 행함이 있는 말, 실천이 따르는 말은 권위를 갖습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그 길을 가면 십자가에 처형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당하게 그 길을 가잖아요. 왜 갈까요? 그 앎이 참되기 때문이지요. 제대로 알면 그 길밖에 없는데 안 갈 수가 없어요. 죽어도 갈 수밖에요. 행동이 따르지 않는 앎은 참되지 않다는 증거예요.”(최종수, “도법 스님과의 대화”, <<녹색평론>>, 105, 194)

 

또 하나 앞일을 예측하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 예측은 대부분 그냥 흐름을 읽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는 집착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3. 권위 - 악한 귀신을 꾸짖음

 

가장 격렬하게 예수의 권위에 반응을 보인 것은 악한 귀신들이었습니다. 악한 귀신들이 귀신 들린 사람의 입을 빌어서 말합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는 악한 귀신을 꾸짖어 그 사람에게서 나가게 합니다.

참된 권위는 악한 귀신들이 두려워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정반대이지요. 돈 귀신에 들린 사람들이 돈 벌기에 더 유리한 친분을 쌓으려고 교회에 갑니다. 권력 귀신에 들린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뿌려 가면서 무슨 총회장 자리 하나 얻으려고 투쟁에, 투쟁을 거듭합니다. 교회는 이제 악한 귀신 들린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귀신 들린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돈 귀신이 들렸으니 강의 아픔이 보이지 않습니다. 힘 귀신이 들려서 기독교정권을 싸고 돌다보니 어느새 가장 가까운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민 투표 꼭 하라는 이야기도, ‘나는 꼼수다듣지 말라는 원색적인 이야기도 목사님의 설교로 듣게 되었습니다.

참된 권위는 악한 귀신들이 두려워합니다. 악한 귀신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악한 귀신들이 좋아하는 교회라니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말이 우리 교회 안에서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예수의 사랑이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악한 풍조가 더 썩은 냄새를 풍기며 진동하고 있습니다. 마음 아픈 일입니다. 옷을 찢고 가슴을 찢고 울어야 할 일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드러내주는 고린도감독 디오니시우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교도들은 그들 가운데 질병의 징조를 보이는 자들을 내쫓았을 뿐만 아니라 가장 가깝고 친근한 자들도 도망하였다. 아직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병자들을 시내로 내쫓았으며 시체를 묻지도 않은 채 유기를 하였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병자들을 간호하다가 병균이 옮아 죽기까지 하면서도 그들을 돌보았다.”

 

오늘 예수의 권위는 어떻게 세워집니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을 통해서 세워집니다.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우리들을 통해서 세워집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때 예수님의 권위가 우리를 통해서 회복됩니다. 그렇게 우리가 권위를 가질 때 악한 귀신들린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 떱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그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가 우리들 안에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때보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귀신을 내어쫓고 그들을 고쳐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하나 붙잡고 그대로 살아가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만만한 말씀 하나 붙잡아 그대로 살아갑시다. 우리 안에서 예수의 권위가 회복됩니다. 병든 세상을 고치는 일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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