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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후회를 지나 동의로'... 마가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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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율법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마가 2,1-12

 

노래 하나 떠올리면서 말씀을 열겠습니다. 이문세의 옛사랑.

가사를 잠깐 읽어 드릴께요.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밑 불빛들 켜져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 걸

아마도 사랑을 잃고 멀쩡한 척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그 옛사랑이 다시 덮쳐오는 날을 겪었나봐요.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와 화, 또 그보다 더한 그리움이 가사를 통해서 전해집니다.

뜬금없는 옛사랑 타령이냐구요? 우리 안에 있는 옛일’, 그리고 후회’, ‘’, ‘용서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요.

 

1. 후회하지 말아라.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은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로 시작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지난 일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아직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지난 일을 지나,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새 일을 시작하고 계십니다. 아직 사람들은 지나간 일을 기억하고 옛일을 생각하느라 하나님의 새 일을 보지 못한다고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지나간 일을 기억한다, 옛일을 생각한다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후회와 추억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많은 시간을 후회 속에서 보냅니다. 언제 가장 많은 후회를 할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또 하던 일이 망하거나, 좇던 꿈이 사라졌을 때, 자신이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렸다고 느꼈을 때. 아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할 것입니다.

옛일을 후회할 때 어떠시던가요? 마음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후회한다는 건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것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자꾸만 되돌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새 일이 시작될 수 없도록 방해합니다. 계속 후회한다는 것, 계속 내가 지나간 일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결과를 낳습니다.

 

이 후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나는 나인대로 내가 옳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내가 나인대로 신으로부터 생각된 상태이며, 내가 나인대로 신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나는 부정합니다. 후회로 나는 그 힘과 적대하는 자리를 차지합니다. 나를 나인대로 생각한 그 힘에 적대합니다. 나를 나인대로 사랑하여 나를 나인대로 그 힘에게 봉사하게 하는 그 힘에 적대합니다. 후회는 나를 그 힘의 사랑에서 떼어놓습니다. 후회는 사람들의 사랑과도 나를 떼어놓습니다. 후회는 그 힘에 적대하는 차원으로 다른 사람들도 끕니다. 후회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을 거절하게 하는 상에 봉사케 합니다, 신의 사랑을 거절하게 하는 상에 봉사케 합니다.

-‘체험되는 신비중에서

 

2. 동의

후회가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면 지나간 일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후회와 그결과들로부터 벗어납니까? 동의로 벗어납니다, 우리인대로 우리에게 동의함으로 벗어납니다, 우리가 행한 것에 동의함으로 벗어납니다, 우리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 행위의 결과가 어떠했던지 동의함으로 벗어납니다. 였던 모든 것과 오는 모든 것에 우리가 동의함으로 벗어납니다. 하나의 움직임이 모두를 위해 완성시키는 그 움직임과 공명에서 우리가 동의함으로 벗어납니다. 어떤 고통보다 더 큰 그 사랑과 공명에서 동의함으로 벗어납니다. 죄나 무죄 너머에서 모두를 같게 완성시키는 사랑과 공명에서 벗어납니다 - 모두를 사랑으로 완성시키는 그 힘과 공명에서 벗어납니다.

-‘체험되는 신비중에서

 

오늘 고린도후서의 본문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그리스도께서는 도 되셨다가 동시에 아니오도 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만 있을 뿐입니다.” -고후 1,19

 

이 말씀의 경우에는 지금 이야기되는 과거에 대한 동의는 아닙니다만 그냥 좀 끌어다 쓰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밖에 없습니다. 그때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후회하는 것입니다. 후회를 통해서 반성하면 새 일이 시작되지만, 후회가 계속 우리 마음에 남아있으면, 후회를 통해서 나나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나 남을 탓하게 됩니다. 정죄하면 새 일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동의함으로 그때 우리가, 내가, 또 당신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동의함으로, 우리가 한 일인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이끌어오셨다는 것에 동의함으로 우리는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뵈올 수 있습니다.

 

3. 중풍과 죄의 용서

중풍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들것에 실려옵니다. 중풍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오는데, 터지는 것보다는 막혀서 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 때문에 마음과 몸이 꽉꽉 막혀서 모든 행동이 마비된 상태. 이런 사람은 아마 마음의 중풍을 앓는 사람이지요. 때로 이런 중풍, 앓아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일에 대한 후회는 나를 계속 아프게 해서 다음 단계의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기계적으로 일상을 살고 있어도 뭔가 마비된 사람처럼 생기를 잃고 때로는 아예 집 밖을 나오지 못하고 계속 누워있게 되기도 합니다. 참 고통스럽고 아픈 시간이지요.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중풍병에 걸린 환자가 예수님께로 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예수께로 갈 수 없었는데 지붕을 뜯어내고 자리를 달아내려 예수님 앞으로 이 사람을 보내줍니다. 참 고마운 사랑이지요. 남의 아픔을 고쳐주려고 한계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극복해가는 모습, 참 고맙고 멋진 사랑의 모습이지요. 여기 앉아있는 우리들 모두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거든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고 도와주도록. 그러니까 마음의 중풍이 걸렸을 때 아닌 척 하지 마시고 주위에 이야기를 하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도와주는 것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너무 고마운 친구들을 통해 예수님과 다시 연결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

예수께서 이 사람을 보고 처음 하신 말씀은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입니다. 이 사람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든 켜켜이 쌓여있는 죄책감, 또 원망,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향해 돌리던 그 아픈 화살을 건드려주십니다. 예수님 만나면 우리 죄를 용서받습니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로, 그 중에서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괴로우신 분 있으시면 오늘 예수님께 좀 만나주시라고 데이트를 신청해 보세요. 틀림없이 만나주시고 우리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왜 용서해주시는지 아세요? 우리가 그동안 반성을 많이 했으니까요? 그래도 잘 살아볼 의지가 보이니까요? 그도 저도 아니고 단지 불쌍해서요? 그게 다 아니예요. 예수님이 이 중풍병자에게 용서를 선언하신 건 그 친구들의 믿음 때문이예요. 재미있죠? 이사야서의 말씀은 더 재미있어요. ‘내가 너를 용서한 것은 너 때문이 아니다. 나의 거룩한 이름을 속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내가 더 이상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죄 지은 것도 우리 탓이 아니었지만 죄를 용서 받는 것도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예요.

 

지나간 일들은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시기 바랍니다. 후회는 죄의식을 만들고 죄의식은 우리를 마비시킵니다. 움직일 수 없게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지금까지 일해오셨고, 우리 안에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방해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지나온 일들에 오로지 합니다. 지난 일에 동의함으로 새 일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켜켜이 쌓인 후회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더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받습니다. 마침내 자리를 걷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희망터에서 올해 함께 중보기도를 합니다. 내가 막 움직여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병도 낫고 또 죄도 용서받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서로 중보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 중보하면 내가 움직일 수 없을 때 우리 식구들 기도로 병도 낫고 죄도 용서되는 기쁨이 우리 안에서 충만해질 것입니다. 기도와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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